10/31 죽을때까지 몸을 움직여라
일하는 사람 평균수명, 노는 사람보다 14년 길어
박상철(朴相哲·53) 서울대 의대 교수의 체력과학노화연구소와 조선일보 취재팀이 전국의 100세 이상 노인 103인(남자 13명, 여자 90명)을 인터뷰한 결과, 젊었을 때부터 늙어서까지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 노인들이 천수(天壽)를 누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백세인(百歲人)들은 활동에 지장이 없으면 논밭에서 일을 하거나 산책을 즐겼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자식들의 봉양(奉養)을 기다리는 백세인은 드물었다. 오히려 자식들은 100세 넘은 부모가 다칠까봐 집안에 계시길 간청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백세인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일본은 세계 최장수국(남자 77.72세, 여자 84.6세)이지만, ‘누워있는 노인’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2000만명을 넘어선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 가운데 5%인 100만명 이상이 꼼짝하지 못하는 ‘병든 노인’으로 추정된다. 정(靜)적인 일본 노인과 달리 한국 백세인들은 그런 점에서 동(動)적인 인생을 사는 셈이다. 박상철 교수는 “요즘은 어떻게 건강하게 늙느냐가 중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 노동도 즐기면 운동이다
노동이 운동이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박상철 교수는 “일도 기쁜 마음으로 하면 건강에 좋다”고 밝혔다. 같은 밭일을 해도 억지로 하면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즐겁게 자발적으로 일하면 운동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경남 거창군 거창읍의 정일선(102) 할머니는 빨랫줄에 걸린 옷을 손수 걷어서 입은 뒤 방문객을 마루로 안내했다. 정 할머니는 “아들을 돕겠다”며 틈만 나면 사과밭에 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아들 김익권(69)씨는 어머니가 다칠까 텃밭만 가꾸라고 사정한다. “평생 해온 밭일이라 몸에 뱄다”는 정 할머니는 “비가 오면 밭에서 일을 못해 우울하다”고 말했다.
강원 화천군 양구읍의 허복순(100) 할머니는 4㎏짜리 비료 포대를 운반할 만큼 기운이 장사다. “많이 먹어야 일도 시원시원하게 할 수 있다”는 허 할머니는 하루 6번 식사를 하고 여름엔 아이스크림을 매일 7~8개씩 먹는다고 한다. “일을 안 하면 게을러져, 생활도 불규칙해지고…. 그러다 그대로 가는 거지.” 강원 화천군 간동면의 유근철(98) 할아버지는 콩밭에서 풀을 베다가 방문객을 맞았다. 지난해까지 아들과 따로 논밭을 관리했다는 유 할아버지는 “심심해서 일한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까지 자식 도움 안 받고 혼자 일해서 먹고 살았다”며 “지금도 내 재산은 내가 관리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오키나와 지역에 장수 인구가 많은 이유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논과 밭에서 일하는 관행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이 지역을 조사해보면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는 인력의 대부분이 80대 이상 노인들이다. 오키나와와 생활환경이 비슷한 제주도에 8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이 높은 것도 나이를 잊은 자립성과 근면성 덕분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박상철 교수는 “최근 수명과 직업의 관계를 조사한 한 국내 보고서에 따르면, 일을 하는 사람의 평균 수명은 무위도식하는 사람에 비해 14년쯤 길었다”며 “즐겁게 노동을 하는 것은 육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좋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백세인들의 경우, 남자는 평균 75세, 여자는 평균 72세까지 생업에 종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 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
전남 구례군 광의면의 장두흠(94) 할아버지는 매일 1~2시간씩 부인 이사순(92) 할머니와 마을 산책을 한다. 올해로 결혼 76년째라는 장 할아버지는 “50년 이상 마누라와 산책한 게 병 없이 늙은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은 할머니 건강이 좋지 않아 많이 걷지는 못하지만, 날씨만 좋으면 할머니 손을 잡고 사립문을 나선다. 장 할아버지는 홀로 된 며느리의 농사일을 도울 만큼 정정하다.
전남 곡성군 덕산면의 신철현(91) 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 여름이었다. 신 할아버지는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도 무릎까지 내려오는 두루마기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허리가 꼿꼿한 신 할아버지는 “지금도 소주 한두 잔은 매일 꼬박꼬박 마시고 담배는 심심할 때 한 개비씩, 하루에 딱 세 개비만 피운다”고 말했다. “심심할 때가 하루 세 번뿐이냐”고 묻자, 신 할아버지는 “늙으면 하는 일이 없어도 괜히 바쁘다”고 말했다. 신 할아버지는 바쁜 하루 일과를 보냈다. 아침 상을 물리고 나면 산 중턱에 있는 큰 아들 과수원으로 출근한다. 밭일을 거들다가 아들 내외와 점심을 먹은 뒤 산에서 내려온다. 오후에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을 일에 참견하고, 밭농사와 오리사육을 하는 작은 아들 집에 방문하기도 한다. 신 할아버지는 “그래도 심심할 땐 밭에 나가 풀을 벤다”고 말했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의 김휴갑(96) 할아버지는 전직 소장수 출신답게 틈만 나면 읍내로 나가 돌아다닌다. 김 할아버지의 며느리는 “동네 사람들이 늙은이를 내돌린다고 흉보지만 어쩔 수 없어요. 시아버지는 왱왱거리는 벌 같습니다. 도무지 집에 가만 계시질 않아요”라고 말했다.
최윤호(39) 성균관대 의대 교수는 “노인들은 걷기나 체조, 춤처럼 뼈와 관절에 스트레스가 적은 운동을 매일 꾸준히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건강한 노인들이라도 다쳐 움직이지 못하면 폐렴 등 감염성 질환에 걸리기 쉽고, 변비나 요실금 등으로 고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상철 교수는 “평지보다 야트막한 언덕을 빠른 속도로 걸으라”고 추천했다. 단, 속옷에 땀이 밸 정도까지 걸어야 운동효과가 있으며, 50세가 넘은 사람들은 매일 40분쯤 속보(速步)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진단/ 오래 살려면 머리·다리 끊임없이 써야
운동이 장수를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인이란 점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개 동의한다. 그러나 운동의 종류·강도·기간 등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실제 백세인(百歲人)을 대상으로 한 여러 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장수인들이 부지런하다는 점과 항상 신체를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지역의 대부분이 평야지대가 아니라 산간지역이라는 점을 먼저 주목해 보자. 일본의 장수지역 오키나와에도 섬 북쪽 산간지역에 장수마을이 밀집해 있다. 또 우리나라 백세인 조사에서도 장수지역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중산간(中山間) 지역이 많았다. 이들 지역은 건조한 공기를 갖는 고산지대로서 기복이 심한 지형이 많아서 희박한 공기와 함께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많은 신체 활동량이 필요했다. 활동 상태가 좋을수록 혈장 알부민 수준도 높게 나타났다.
이들은 특히 손아귀 힘이 세 나이가 들어서도 정상인들처럼 농사일을 했으며, 힘이 있는 한 햇볕을 쬐러 외출을 했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동작은 운동의 효과가 적다. 밭일을 하더라도 성취감을 느끼고, 마음을 쏟을 수 있어야 진짜 운동이 된다는 것이다. 즉 기쁜 마음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운동 효과가 크다는 의미다.
정신 활동도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일반인 평균 수명이 36세에 불과했을 때 저명한 화학자인 알렉산더 레오 등은 100세를 넘겨 살았다. 당시 저명한 과학자·예술인의 평균 나이는 73세에 달했다고 한다. 괴테·비발디 등이 80세를 넘어 살았고, 말년에 불후 명작을 낸 점은 정신활동도 육체적 삶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증거다.
한편 조사단이 만난 백세인 중에선 본인이 스스로 개발한 체조를 수십 년째 계속하거나, 20~30리 떨어진 읍내까지 정기적으로 아직도 왕복하는 분, 고개 너머 사는 이웃 마을 친구를 매일 찾아다니는 분도 있었다. 이런 모습들은 건전한 일상생활의 규칙적 리듬이 장수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나이가 아무리 많더라도 자신의 적극적인 의지와 노력에 의해 꾸준히 운동한다면 죽는 순간까지 건강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적극적 ‘다리품 팔기’와 총괄적 ‘뇌 사용하기’야말로 장수의 비결인 것이다. (조선일보 2002-10-20 박상철·서울대 의대 교수)
2002-10-31 10:1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