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3 휴가철 치매노인 돌봐드려요
회사원 김모(41·서울 금천구)씨 가족은 오는 28일 수도권 인근 휴양림으로 휴가를 다녀오기로 했다. 일가족이 함께 움직이기는 5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김씨는 쉬는 날이 회사를 나갈 때보다 더 힘들었다. 주중에 파김치가 돼 버린 아내를 잠시 쉬게 하고 치매를 앓는 노모(77세)를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달력에 빨간 글자만 봐도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올해 휴가를 떠나게 된 것은 지난 10일 서울 중계동 평화종합사회복지관 치매노인단기보호소에 노모를 맡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명 ‘탁노소(託老所)’라고 부르는 이 같은 단기보호소는 월 37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최장 3개월까지 치매 노인을 의탁할 수 있다.
정부보조금을 지원받아 전문 사회복지사들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노인보호소는 지난 92년 처음 설립됐으며 올 7월 현재 전국적으로는 37개소(정원 477명), 서울 시내에는 13개소(정원 253명)가 운영되고 있다.
여름 휴가철을 맞으면서 서울 시내 노인보호소들은 예약객으로 붐비고 있다. 일부 시설들은 치매 가정의 여름 휴가를 위해 ‘특별 예약’을 받는 곳도 나오고 있다.
김씨가 노모를 맡긴 보호소도 지난달 40여명이었던 대기자수가 이달 들어 90여명으로 급증했다. 정원 30명의 3배이다. 간호사 권순남(여·50)씨는 “주 5일 근무제 실시와 여름 휴가철이 겹치면서 예약 인원이 크게 늘었다”며 “한정된 정원에 예약이 밀려들어 3~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은천노인복지회(회장 이병만·李炳娩)의 노인보호소는 다음달 5일부터 8일까지 4일간 정원을 25명에서 32명으로 7명 늘리기로 했다. 임정호(任整好·28) 사회복지사는 “여름 휴가를 즐기려는 치매가정을 위해 곧 특별예약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탁노소’의 프로그램은 일반 탁아소를 연상시킨다. 보호 노인들에겐 사회복지사나 자원봉사자가 1인당 1명꼴로 할당돼 숙식과 치료 등을 돕는다. 전문간호사도 시설당 3~4명 정도가 있다.
노인들은 상담과 산책, 건강체크, 물리치료, 재활훈련 등으로 하루를 보낸다. 하루 3시간 정도 실시되는 재활훈련은 재미와 함께 두뇌·신경 기능 회복을 시도하는 프로그램으로 그림그리기, 선 바로긋기, 쟁반에서 검은 콩 골라내기, 노래방 반주에 맞춰 노래부르기, 종이퍼즐 놀이 등으로 구성돼 있다.
3년 전부터 휴가철에 맞춰 치매를 앓는 부친(75)을 보호소에 맡겨왔다는 임형진(任螢辰·43·서울 은평구)씨는 “처음엔 못할 일을 하는 것 아니냐는 자괴감도 없지 않았는데 기우였다”며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좋은데다, 보호소를 다녀오시고 나면 웃음이 많아지고 상태도 호전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임춘식(林春植·53·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관장은 “노원구에 정부 지원을 받는 어린이집은 27곳이지만 노인보호소는 단 두 곳”이라며 “치매가족들의 소외감을 덜고 노령화시대에 대비하려면 정부가 이 같은 시설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2-07-24 09:4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