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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함께 어울리며 나이잊어요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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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함께 어울리며 나이잊어요


은평복지관 송석련씨 “함께 어울려 나이잊어요”

31일 은평노인종합복지관 교육실.
60~70대 할머니 30여명이 초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를 소리내 읽고 있다.
볼펜에 끼워넣은 몽당 연필로 정성스럽게 공책에 글자를 옮겨 적기도 했다.
한글교실 초급반 수강생인 이들은 선생님이 들어오자 입을 모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할머니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이 복지관에 다니는 70대 할머니.
초등학교 교사 출신 송석련(宋錫蓮·75)씨다.
그녀는 ‘제자’에게 “밑줄 그으며 열심히 따라 읽으세요” “글씨를 예쁘게 잘 쓰네”라며 격려했다.
한 제자가 반말로 “어젠 아파서 못 왔어”라고 하자 송씨는 “아프지 마”라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32년간 교직에 선 뒤 1993년 불광초등학교에서 퇴직할 때까지만 해도 송씨는 막내아들 부부와 함께 살며 손녀딸의 재롱을 낙으로 삼는 평범한 할머니였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막내아들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수억원대의 빚더미에 앉았다.
송씨는 하루 5000원이 일당인 보험회사 설계사로 뛰고 퇴직금도 대줬지만 빚을 갚기엔 부족했다.
1999년 12월 외출했다가 돌아온 송씨는 아들이 화장실에 쓰러진 채 숨져 있는 걸 보았다.
아들 장례를 치른 후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낸 송씨는 그 뒤 같은 동네의 95세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동사무소에서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받은 송씨는 취로사업으로 하수도를 치우며 생계를 이었다.
아들을 잃은 뒤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녀는 2000년 가을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병원에선 ‘화병(火病)’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사람 많이 만나고 운동을 하라”는 조언에 송씨는 노인복지관에 나오기 시작했다.
복지관에는 글을 못 읽거나 기초 계산도 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많았다.
하지만 노인들은 글을 못 읽는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노래·춤 강습 등 취미활동에 더 매달렸다.
“같은 할머니가 가르쳐주면 교육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복지관의 설득에 송씨는 작년 1월 교단에 다시 섰다.
은평구 노인대학에서 한글·수학을 매주 2시간씩 가르쳐온 송씨는 올해 1월부터 노인복지관에서도 매주 4시간씩 한글·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복지관의 ‘강사양성 프로그램’에 등록해 1년간 노년학·인간관계론·교육학 등을 교육받기도 했다.
송씨는 다른 교사들과 달리 할머니들의 눈높이에 철저히 맞췄다.
송씨는 “글이나 계산을 완벽하게 할 필요는 없다” “뇌졸중·치매를 막고 외로운 노인끼리 친구가 되자”고 노인들을 설득했다.
‘나의 살던 고향’ ‘목포의 눈물’ ‘산토끼’ ‘송아지’와 같은 노래를 박수·율동과 함께 부르며 노랫말에 재미를 붙이게 했다.
재미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처음엔 4~5명에 불과하던 수강생들이 30여명까지 늘었다.
지난 7월 말 송씨는 ‘할머니 제자’들에게 편지를 한 장 받았다.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정성스럽게 쓴 편지에는 “무더위에 수고가 많다” “땀 흘리며 가르쳐주는 걸 보면 더욱 감사하다”는 내용.
송씨는 “몸이 아파서 그만두려고 할 때도 할머니들이 이젠 못 그만두게 할 정도”라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40여분간 버스를 타고 오는 백소례(67)씨는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이 강의는 재미있다”고 말했다.
80세 최고령인 안영미씨는 “배우는 것이 좋아 웃음이 절로 나온다”고 했다.
은평노인종합복지관 엄재경 사회복지사는 “전쟁·가난 등으로 교육 받을 시기를 놓친 노인들이 쑥스러움 때문에 용기를 못 내는 경우가 많다”며 “노인 자원봉사자가 더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2-11-01 글·사진=김성현기자 danpa@chosun.com)



2002-11-02 10: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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