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눈치보는 시어머니 늘어
자녀의 눈치를 보며 사는 시부모들이 늘고 있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손숙자 할머니(71, 가명)에게는 맞벌이를 하는 아들이 있다. 애봐줄 사람이 없어 따로 사는 할머니가 아침 일찍 아들네 집으로 출근해 집안 청소하고 애기보고 빨래까지 하며 하루를 보낸다. 힘이 다 빠져 기진맥진한 할머니는 지쳐 울면서 일을 한다고 한다.
''오늘도 울었어요. 이제 힘이 부쳐 애를 못 봐주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들이 두려워 말을 못하겠네요''
경기도 부천시 박순일 할머니(68, 가명)는 가장으로 군림하며 아내를 끔찍이 아끼던 남편이 죽고 나니 이제는 자신이 함께 사는 며느리 눈치를 보게 된다며 속상해 한다. ''한 집안에 살아도 나의 존재는 안중에 두지 않고 식사도 각자, 세탁도 각자하며 사니 남과 다를 바 없지. 며느리는 피가 차가운 것 같아''
최근 시어머니들 사이에서는 아들네 집에 김치를 갖다줄 때 며느리한테 얼굴만 비쳐도 부담을 주니 수위실에 맡기고 오는 것이 예의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할 말이 있다는 것.
지난 달 말 시부모와 분가한 전은정씨(여, 28, 서울 성북구 길음동)는 ''시부모님이 정말 좋으신 분이란 것은 저도 인정해요 하지만 함께 살면 시어머님이 조금만 기분이 안 좋으셔도 왠지 저 때문에 그러신 것 같아 신경이 쓰여요. 부모님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죠''라고 말한다.
전씨는 최근 맏아들 집으로 부모님이 옮겨가시면서 큰며느리와 자시 사이에 대단한 신경전이 벌어졌다고 덧붙인다.
남편 스스로 부모님이 다시 집으로 들어오시지 않게 남은 방한 칸을 다른 사람에게 전세주자는 말까지 꺼냈단다.
시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신 뒤 홀로 남은 시어머니를 모시는 홍미진씨(28, 인천 부평구)는 시어머님을 모시면서 살이 8Kg이나 빠졌다. 분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홀로 된 시어머니를 외면하는 것이 사람된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속만 끙끙 앓고 있다.
신세대 며느리들은 ''이제껏 생판 남이었던 시부모를 결혼과 동시에 갑자기 가족이라며 살갑게 지내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라고 말한다. 친부모와 살아도 싸울 때가 부지기수인데 시부모와 살면 불만이 있어도 터트릴 수가 없고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다는 것. 전문가들은 부모가 며느리와 사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아내와 산다는 마음으로 담담히 지켜보는 현명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노인의 전화 강병만 국장은 ''지금은 부모세대는 언제나 희생하며 자녀에게 물질적·정신적으로 모든 것을 다 해줬기 때문에 자녀의 결혼 후에도 그들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경제적으로 눈치를 보게되는 상황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강국장은 ''노인들도 며느리와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지 말고 취미생활 등 자신의 생활을 가져야 하며, 친정 어머니와 딸처럼 살갑게 지내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서로 남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시니어저널 2002-6-10)
2002-06-17 10:5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