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2 나이듦에 대한 위인의 사색
키케로·보부아르·헬렌 니어링이 말하는 '노년'
젊은 날의 편견·욕정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시기
나이 듦에 대한 범인의 고통은 매우 현실적인 듯 하면서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기에 더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과연 늙고 죽는 것이 그렇게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사실 끔찍한 것은 노화 자체의 결과가 아니라 젊은 시절의 방종·방약의 결과로서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라는 편이 더 옳지 않을까.
우리가 위인이라 부르는 역사 속 존경받는 인물들이 생각하는 노년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노년과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기원전 63년 로마 공화정의 최고 지도자이자 웅변가, 문인이기도 했던 키케로가 역설하는 노년은 젊은 시절보다 훨씬 행복한, 완벽한 철인(哲人)의 모습이다.
''나는 노인들에게는 쾌락에 대한 바람조차 없다고 믿고 있다.
바라지 않는 것은 부담이 되지 않으니까. 어떤 사람이 나이가 들어 쇠약해진 소포클레스에게 성생활을 즐기느냐 질문했을 때, '무슨 끔찍한 말을! 마치 잔인하고 사나운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나는 그것(욕정)으로부터 간신히 빠져나왔네'라고 대답했지. 모두가 그런 저열한 욕정을 가지길 바라는 자들에겐 소포클레스처럼 욕정이 결여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가증스럽고 화가 나겠지만….(중략, '노년에 관하여' 중에서)'' 키케로는 노인이 된 자신을 바라보며 황소나 코끼리의 힘보다 더 큰 힘을 바랐던 젊은 날의 어리석음을 반성했다. 그러면서 노인이 스스로를 지켜나갈 자존심과 책임, 독립성을 가진다면 노년은 매우 영예로운 인생의 한 시기라고 말하고 있다.
문명에 선택된 자였으면서도 평생을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소박한 삶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다 간 행동가 스콧 니어링의 완벽한 동반자 헬렌 니어링은 '인생의 황혼에서'를 통해 스콧 니어링이 죽음을 어떻게 자연스런 삶의 일부로 만들었는가에 대해 잔잔한 어조로 설명한다.
''물만 먹고 지낸 지 일주일 뒤 죽음이 바로 다가온 그 순간, 그는 초연한 자세로 그리고 여전히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그는 가늘게 숨을 내쉰 다음 더 이상 숨쉬지 않았다. 이렇게 그는 적극적인 의지로 다른 곳으로 갔다. 바로 잘 죽는 기술을 실천한 것이다'' 80대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갈 시기를 결정한 스콧 니어링의 선택은 누구나 따를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다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죽음 그 자체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훌륭하게 죽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 될 수 있다.''는 사이러스 설즈버거의 말처럼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 자유롭기 위해 생사관을 가져야한다는 헬렌 니어링의 충고는 보통 사람들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명언이다.
이에 비해 에세이조차 신문 사설처럼 쓰는 보봐르에게서 키케로처럼 고상한 노년기에 대한 찬미나 니어링처럼 늙어감과 죽음에 대한 자연주의적이며 영적인 고즈넉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 세기의 지성 시몬느 드 보봐르의 노년에 대한 사색은 너무나 분석적이고 앙가쥬망(현실참여)의 프랑스 지적전통에 충실해 있다. ''사실 우리가 삶에 대립시켜야 하는 것은 죽음보다 차라리 노년이다. 노년은 죽음의 풍자적 모방이다. 죽음은 삶을 운명으로 변화시키고 삶에 절대의 차원을 부여함으로써 삶을 구원한다.(중략) 빅토르 위고는 80세였을 당시, 그의 현재가 과거를 마멸시키고 있었다. 현재의 과거에 대한 우위는 현재가 과거에 있었던 것의 쇠퇴나 혹은 과거의 부인인 경우 특히 슬픈 것이다. 옛 사건들, 예전에 획득한 지식들은 생명의 불이 꺼진 삶 속에 자기 자리를 지킨다. 그것들은 존재했던 것이다. 기억이 쇠퇴하면 그것들은 하찮은 어둠 속으로 침몰해버린다. 삶은 마치 닳고닳은 스웨터처럼 한 고리 한 고리씩 풀려나가 노인의 손에 남는 것은 오로지 형태 없는 실오라기 몇 가닥밖에 없다. 더욱 비참한 것은 그를 침범한 무관심이 그가 과거에 가졌던 열정, 확신들, 활동들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들을 부인한다는 것이다. (중략, '노년' 중에서)''
사실 대다수의 노인들이 겪는 실제 여건을 고려할 때, 정신주의적인 객설들은 너무 터무니없다는 보봐르의 말이 가장 현실에 근접해 있는지도 모른다. 배고픔, 추위, 질병이 반드시 어떤 정신적인 이득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독히도 냉정한 어조를 유지하는 보봐르조차도 이것 하나만은 인정한다. 노년은 인생이라는 과정의 결말이며 연장이라는 것이다. 잘 늙어감으로써 그의 인생은 하나의 완결된 작품, 명작이 된다. 흔히 불꽃처럼 살다가 요절한 인생에 대해 묘한 선망을 품지만 명작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완결의 과정, 바로 노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2-07-22 15:46:34